*기자 시절의 필자(1972)

세월이 빠르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세월을 생각해 봅니다. 세월처럼 허무한 것이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이 든 이들을 볼 때 자기들이 겪을 인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가 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나이 먹었을 때는 좀 더 근사한 인물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이 먹은 우리도 아름다운 젊은 시절이 있었고 세월이 백발을 가져다 줄 줄은 몰랐지요. 그러나 세월은 가고, 그 세월은 인생을 가져가고 그래서 인생은 깊은 허무를 느끼는 단계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공자는 인생의 15세를 중요시 했습니다. 인간이 15세면 배우는 일에 뜻을 둔다고 했습니다. 그 이전의 시절은 부모를 의지하고 철없이 지내지요. 철없이 지낸다는 것이 뭡니까? 철, 계절을 모르고 산다. 그런 말입니다. 공자는 다시 30을 중요시해서 인간이 30이면 자신의 입장이 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30의 언덕에서 인생의 긴 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15세에서 30세까지 세월은 느리게 갑니다. 그러나 30이 지나면 세월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음악용어로 아다지오(adagio)이던 세월이 알레그로(allegro)로 변조됩니다. 천천히 가던 세월이 빨라진 거죠.

다시 공자는 40이 불혹(不惑)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나이 40이면 30에서 세운 확고한 자리에서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이, 이 40고개에 들어서면 세월은 참으로 빨리 갑니다.

그 다음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빠르지요. 50이 잠깐입니다. 공자는 다시 말하기를 50이면 하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뜻이 뭡니까?’ 50된 인간을 향해서 인생을 준비하라 그 말입니다. 가야할 시간을 내다볼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50이면 인생의 석양입니다.

고려 말의 유명한 학자인 이색(李穡)은 시조 한 수를 읊어 인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드메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석양이 비끼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공자는 다시 60을 이순(耳順)이라고 했어요. 원만한 인생, 너그러운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60이 되면 얼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편안하고 화평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포용할 줄도 알고 부드러운 인생을 살아야 할 나이가 곧 60입니다. 이 때의 세월은 참 빠릅니다.

공자는 70을 가리켜 종심(從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쫓아 행해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했으니 마침내 인간이 하나의 이상(理想)에 도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인생의 관계들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우리는 살아가면서도 절실하게 실감하지를 못합니다.

세월이 빠르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오늘 예쁘던 사람이 늘 예쁜 게 아니고 오늘 건강하던 사람이 항상 건강한 게 아닌 걸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월과 함께 오늘의 미모가 내일 무너지기도 하고 오늘의 건강이 내일 병원에 가게도 만드는 것입니다.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언론이 선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어느 가을에 그분이 신문에 수필 한편을 써서 게재했는데 제목이 ‘가을을 앓는 병’ 이었습니다.

인생의 가을, 계절의 가을을 그가 앓고 있더라고요. 그 내용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가을이 되어 풀벌레들이 우는 울음소리가 마치 자기 귀에는 ‘자! 가!’ 그러는 것처럼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그만 가라는 말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가을벌레들의 울음이 그렇게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배의 탄식인 즉, “그런데 나는 갈곳이 없구나!” 물론 그 선배는 끝내 가고 말았습니다만, 계절의 가을, 인생의 가을은 참으로 황량한 것입니다. 인생은 가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고도 없이 순서도 없이 갑니다. 아무리 바쁘게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이 사실을 우리는 음미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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