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금까지 겨울 한라산을 10여회 등산했다. 체력과 영혼을 충전하기 위해서 였다. 인생도 이렇게 힘든 여정이라고 생각케 했다.

벽에 걸린 ‘캘린더’에 마지막 한 장만이 남았다. 12월, 예전 ‘캘린더’는 대개가 3백65장짜리였다. 그러니까 마지막 달에 접어들었다해도 아직 30장이나 더 ‘캘린더’를 찢어버리는 여유가 남아있었다.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한달에 한 장씩, 혹은 두달에 한 장씩 찢도록 되어있다. 요즘의 한달은 예전 하루와 같이 느껴진다. 그처럼 세월이 더 빨리 흐른다. 모든 것이 줄달음치듯 뛰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어도 한달을 단위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예전에는 그저 하루하루만 생각해나가면 됐었다.

요새는 하루를 단위로 해서 살아나간다면 모든 것에 뒤진다. 그래서, 캘린더도 6장짜리가 아니면 12장짜리로 바뀌어졌는가 보다.

그 마지막 남은 한 장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겨울풍경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12월을 아름답게만 그린 시인은 거의 없다. ‘에밀리.브론테’는 ‘어두운 12월’이라 표현했다. ‘키즈’는 또 ‘쓸쓸한 밤과 같은 12월’이라 노래했다.

시인이 아니라도 12월은 누구의 마음에나 서글픔과 외로움을 안겨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애처로움마저 느낀다.

우리는 왠지 서양사람들보다 더 세모를 구슬프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덧없이 시간이 흐른다’고 영탄하기도 한다. 영어에도 ‘시간이 흐른다’는 표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이때 화살처럼 흐르는 시간의 유전성을 먼저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말속에서도 인생의 유전성을 먼저 생각한다. 모든 것은 강물처럼 덧없이 흐른다. 거기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이렇게 예부터 우리는 생각해왔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작도 끝도 없다. 그저 흐를 뿐이다. 그리고 한번 흐른 것은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어둔운 12월이 이 갈색 언덕에서 녹아서 봄의 물로 변한다......,”이렇게 ‘브론테’는 노래했다. 그녀는 황량한 겨울속에서도 밝은 봄을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저 12월의 어두움만을 생각한다. 그러기에 더욱 저물어 가는 한해의 마지막 달이 구성지게 느껴지는가 보다.

그러나 우리가 감상에 젖어있는 동안에도 냉엄한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한해를 속아 산 우리도 또 다른 해를 속아 살 채비를 갖춰야 한다.

“나는 인류의 미래를 믿는다. 진리와 자신의 힘을 믿기 때문에......,”이렇게 말하던 ‘슈바이쳐’박사의 ‘렘바레네’병원도 문을 닫았다. 우리의 어디를 둘러보나 거기엔 하나의 역사의 종장이 가득차 있다. 세계의 어디에서나 새로운 격동의 역사가 새로운 세대에 의해 엮어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만이 세모의 감성속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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