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그것은 나그넷길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는 영광의 모습.

낙엽수의 잎은 봄부터 가을까지 묵묵히 자기 일을 다한 뒤 마지막 길을 떠난다. 화려한 색동옷을 차려입고 몸을 날려 땅위에 떨어집니다.

가을 하늘 아래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차츰차츰 자신의 몸을 가을빛으로 물들이며 나무들은 서 있습니다. 때론 붉게, 때론 노랗게, 나무는 가을의 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무는 나무라는 생각도 없이 그렇게 가을을 영접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나무가 아닌 자리에 가을이 내려와 앉습니다. 나무가 아닌 나무에 내려앉은 가을 역시 가을이 아닙니다.

나무가 나무가 아니듯 가을 역시 가을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물드는 저 빛은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가을이라 말하는 색은 존재가 존재를 잊는 자에서 빚어내는 융합의 빛입니다. 그 빛을 보며 우리가 무상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가을 하늘 아래 서서 나도 나무처럼 두 팔을 벌려 가을을 맞습니다. 눈을 감고 일체의 생각도 없이 가을을 맞습니다. 가을이 내게 내려와 가을과 나는 하나의 색을 빚습니다.

가을도 아니고 나도 아닌 그 빛의 내 영혼을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가을에 이 무아의 은은한 색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여름날의 그 짙은 색의 파열음을 버리고, 융합의 그 은은한 색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진은 4일 범어사 경내에서 작업한 것입니다. 아직 범어사는 다음주가 되어야 단풍이 멋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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