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임 대통령의 권력 누수 현상은 취임과 동시에 시작된다. 절름발이 오리처럼 뒤뚱거린다는 데서 온 레임덕이라는 것도 재선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인 만큼, 재선의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단임 대통령의 레임덕이 취임 순간부터 시작되는 건 당연하다.

레임덕의 가장 상징적인 현상은 여권 내부의 차기 대권을 겨냥한 권력 투쟁일 터이다. 그래서 그것은 대통령의 임기 말에 오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부터는 대통령도 권력 다툼의 어느 한 패로 전락하고, 대통령의 힘이 분산돼 영(令)이 서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겨우 한 달 남짓 됐다. 도둑도 이르다는 속담이 있는데, 벌써 여권 내에 권력 투쟁이 시작됐다. 당장은 총선 후보 공천에서의 계파간 지분 싸움이지만 멀리는 당권 싸움이고 더 멀리는 차기 대권 싸움이다.

권력 저 깊숙한 곳의 일을 다 알 수야 없지만 공천에서 주류가, 그중에서도 특정 실세가 너무 많은 지분을 챙기는 바람에 권력 투쟁에 일찍 불을 댕겼다고 한다. 그가 청와대와 조율했다는 설도 있고, 조율 없이 청와대를 팔아 세력 확장을 위해서 그랬다는 설도 있으나, 하여튼 자기 사람들을 너무 많이 심었다는 것이다. 그는 주류 내의 잠재적 걸림돌까지도 제거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인 비주류의 박근혜 전 당 대표가 자신의 고사 공작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로선, 앞서 대선 라이벌인 정몽준 의원이 입당하고 선거구를 서울로 옮긴 것도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을 터이다.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는 듯 그는 낙천한 뒤 당 밖에서 출마한 친박 인사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하는가 하면 총선 후 그들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당 밖에서 출마한 친박 인사들도 총선 후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추진하겠다고 치고 나왔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데 대해서는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들이다. 그러나 책임 논란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문제는 총선 후다. 총선이 끝나면, 특히 당 안팎의 친박 인사들이 많이 당선된다면, 여권의 권력 투쟁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명박의 주류와 박근혜의 비주류가 싸우고, 주류 내의 이재오 이상득 정몽준 강재섭 등이 다시 분파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여권이 이처럼 조기에 권력 투쟁에 함몰되면 정부의 지지율 하락까지 겹쳐 권력 누수 현상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것이다.

이제 막 스타트라인을 떠난 이 대통령으로선 이러한 현상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임기 초부터 절름발이 오리 신세가 되지 않고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특단의 대책이 강경책이든 유화책이든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강경책을 쓸 경우 주류 내 갈등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힐 수 있겠지만,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비주류 쪽은 통제가 어려울 전망이다. 유화책을 쓸 경우에도 주류 내 갈등이 더욱 노골화할 가능성이 높으며, 비주류 쪽도 이미 믿음을 버렸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낮다.

전제 군주 시대가 아닌데 차기 대권 다툼을 역모로 다스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권력 누수 현상으로 이어져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게 빤한 그것을 방관할 수도 없다는 데 이 대통령의 고민이 있다. 당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도 정권 초부터 권력 투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통제할 것 통제하고 조정할 것 조정하며 설득할 것 설득하여 화음을 만들어내는 이 대통령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적 능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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