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귀의 하십시오' 권유..그 후 만남이 괴로웠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이란 말이 있습니다. 흔히 불교에서 잘 쓰는 말입니다. 한 생각에 삼천가지의 모습의 담겼다는 뜻입니다. 그 삼천 가지의 모습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곳엔 부처님도 있고 악마도 있고, 품격도 있고, 천박함도 있고, 시끄러움도 있습니다.

그 삼천 가지 마음과 모습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그것은 씻을 수 없는 과보를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주 그런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을 봅니다.

후배 도반스님 이야기로 글을 풀어 갑니다. 속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상당한 진리와 지혜가 있는 스님입니다. 부산 범어사 '대정스님'을 은사로 30여년전(?) 출가, 지난 3월경부터 경주 토굴에서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정치학과와 대학원 정치철학을 전공한 인텔리 입니다. 39회 행정고시도 합격에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다가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부처님에게로 출가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올초엔 '인도 네팔 순례기'를 출판했습니다. 무려 페이지가 668페이지 입니다. 책 소개를 한 번 할까 하다가 시간을 놓쳤습니다. 실은 그게 아니고 불교에 대해 귀동냥 정도지 그 책을 읽고 소개를 할 자신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 책은 불교역사와 문학을, 철학을 아우르는 기록이라 읽기가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저는 인도나 네팔을 여행해 본일이 없어 미사여구를 동원해 글은 쓸 수는 있지만 그게 싫었습니다.

그런 도반이 2월경에 통도사에서 안거를 마치고 해제를 하기전에 찾아 뵈었더니 차 한 잔 마시며 "이젠 불교에 귀의 하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한 말이 아닌 것 같아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을 했습니다. 어째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하고 밤새 뒤척이며 고민을 한 일이 있습니다. 조금 깊게 강조했으면 삶의 무게를 집어던지고 머리깍고 초발심을 외우며 실행하는 행자가 됐을런지도 모릅니다. 웃을 이야기이죠.

그런 도반이 가까운 경주 '토굴'에 참선중이라 가끔 연락은 하지만 직접 찾아 뵙지는 못하였습니다. 지난 5월 13일경 경주 '삼릉'에 소나무를 참견하러 가며 하루전에 "내일 찾아 뵐께요"라고 연락을 했었습니다.

삼릉에서 소나무를 관찰하며, 왜 소나무가 고목이 돼 이렇게 많을까하고 자료를 조사했더니 그저 소나무가 아니고 '도리솔'이라 했습니다. '도리솔'은 명사 무덤가에 쭉 둘러선 소나무라고 국어사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도리솔'은 곧게 뻗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상징성을 갖는다고 합니다.

좀 더 깊게 설명하면, 도리는 불교의 33천 가운데 하나인 도리천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 도리천이라는 천당에 서 있는 소나무라고 해서 도리솔이라고 경주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도리솔은 먼저 소나무 특유의 품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도리솔'은 200~300년 세월의 풍상이 녹아 있다는 것 입니다. 곧게 뻗지 않고 이리 저리 휘어지면서 자란 도리솔의 줄기가 바로 인생의 풍파를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삼릉' 소나무에 홀리다보니 스님과의 약속이 말과 달리 틀어졌습니다. 점심 공양을 하고 가라며 '토굴'이 더워서 에어컨을 설치한다며 꼭 들렸다 갔으면 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일행도 있고 해서 울산 태화강변에 갔다가 귀가하였다. "다음에 들릴께요"라고 연락을 했을 정도이죠.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다 변명이고 사실은 "불교에 귀의하세요"란 말땜에 스님을 찾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5월 23일에도 '삼릉' 소나무가 좋아서 경주에 갔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 8월6일 '탐연'하러 갔다가 스님을 꼭 찾아가야겠다고 작정하고 연락을 한 후 주소를 받아 내남면 박달리 '메따승원'을 찾았습니다. 경주에서 단석산 숲속으로 기존 가건물에 스님들이 참선하던 곳 이었습니다. 약 40분이어서 먼 길이었습니다.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가 이어지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승용차로선 불편한 길이었습니다. 동행한 지인들에게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당일 10시40분경 도착하니 스님이 환한 얼굴로 마당에 나와 환대하였습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고, 그간 스님의 일상을 들었습니다. 농부나 다름없이 밭을 갈아 채소 등 먹거리를 심고 물을 주며 '참선'공부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의 "시도 두편이나 썼다"고 말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괜스레 걱정했던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선방 그리고 가건물 두 채도 둘러봤습니다. 스님은 "이 단석산 기는 좋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오십시요"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성철 큰 스님 '공부 노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수행이란 안으로 가난을 배우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 가장 큰 어려운 것은, 알고도 모른척 하는 것이다. 용맹가운데 가장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것이다.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다'

좀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기 어려운 오늘 같은 세상에서, 우리들이 사람의 자리를 지켜 나가려면 하루 한 때라도 순수한 자기 자신을 존재케 하는 새로운 길들임이 있어야 합니다.

얽히고 설켜 복잡하고 지저분 한 생각이 죄다 사라져 버린 순수의식의 상태, 맑게 갠 날 해가 진 뒤의 그 순하디 순한 노을 빛 같은 무심이 일상에 찌든 우리들의 혼을 맑게 씻어주기 위해 스님은 무더운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주어진 그 힘(생명력)을 제대로 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 힘을 바람직한 쪽으로 잘 쓰면, 얼마든지 창조하고 형성하고 향상하면서 삶의 질을 거듭거듭 높여 갈 것입니다.

필자는 인생의 품격있는 훌륭한 도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런 도반 스님을 곁에 두고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살면서 일상을 '메일'로 보내며 음식등 질병에 관한 것도 보냅니다. 그저 스님이 아닌 필자가 만난 품격있는 스님입니다.

스님, 입추입니다. 향기로운 가을 맞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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