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은 어느덧 폐가처럼 황량해 갑니다. 한 시절의 격정 불사른 나무들, 맨몸 허전해 그림자 키웁니다. 깨진 낙엽조각 밟으며 단풍을 추억해 봅니다. 떠난 것들의 빈자리가 눈에 밟히는 계절, 상처 지우면 새살 돋을까요. 눈 없는 소실, 첫 눈을 기다립니다.

카메라와 친구가 된 지 오래입니다. 30년이나 되었으니 뭔가 보일 법도 한데, 렌즈 속 세계는 미지입니다. 사진이론을 아무리 공부해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진의 영역이 분명 존재합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지식보다 감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사진은 세심한 관찰력에서 비롯됩니다. 감성의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면 평소 무심하게 지나친 것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옵니다.

이 순간에도 책상위의 카메라가 블랙홀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지난 20일 범어사 경내에서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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