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장마를 싫어한다. 하지만 장마 때는 장마만의 풍경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계절 특유의 어슴프레한 태양빛 아래서 낮잠을 자는 것 만큼  현실을 등질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바깥세상은 인간 피부만큼 부드러운 온기를 띠고 있다. 뜨겁지도 춥지도 않다. 바람도 없고, 공기 중 수분에 소리가 흡수된 건지 잡음이 사라지고 물소리만 몸에 스며든다. 하늘은 노랑생이 칠한 것 같은 회색이다. 공기는 페르메르 그림 속의 다정하고 희미한 빛을 아련히 품고 있다.

 귓전에 내리는 빗속에서 몽롱하게 꾸는 꿈도 좋다.

올해 장마는 여름날처럼 맑은 순간이 가끔 끼어 있어서 가짜 장마인가 싶을 정도다. 그날은 한밤중부터 술렁거리며 안개비가 나뭇잎을 쓰다듬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 멀리 보이는 산 주위가 안개비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윽고 빗소리만이 술렁거리며 몸을 뒤덮었다. 물소리가 의식을 저 먼 곳으로 데려간다. 내 의식은 두터운 비구름 속을 지나 위로 떠 올랐다. 머리 위에는 성층권의 파란 빛이 좌락 펼쳐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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