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이 글을 씁니다.

 봄이 먼저 찾아오는 곳 제주, 풀들이 솟아 오릅니다.  바람의 끝을 슬쩍 당겨 본다. 저만치 아스라한 유년의 기억, 버들피리 입에 물고 온종일 쏘다니던 햇빛 벌판, 필리리 필리리, 연두빛 파문, 풀물들어 싱싱하던 가슴, 잊어버렸는가. 그리움 얼마나 더 익어야 푸른 빛 돌까. 휑한 가슴엔 더운 바라만 불고....

 공기가 투명하지가 않다. 물기를 머금은 듯이, 꿈을 머금은 듯이 미세란 놈과 모든 것이 보얗게 보인다.

흙을 밀치며 다툼하는 풀잎도 흐느낍니다. 그대의 외로움이 더 외롭게 보입니다. 문득 사람이 그립습니다. 우리들이 숱한 꿈들도 어디에 선가 땡볕에 익어 가겠지요. 결 좋은 이 바람은 누가 빗질해 보낼까요.

겨울은 지났는가? 아직 바람은 쌀쌀하다. 사람들은 아직 겨울의 옷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미련 때문일까? 정말로 겨울을 지났는가?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살짝, 조심스럽게 봄은 손을 뻗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바꿔 놓는다. 봄은 묵은 것, 새것을 뒤바꿔 아무 것도 파괴하지 않으면서......,

 3월 중순 봄은 봄이다. 그리고 꿈과 꽃의 계절이다. 아무리 북풍이 아직은 피부에 차갑다 해도 꺾일 꿈도 아니다. 아무리 눈보라가 모질다 해도 봉오리지는 꽃의 정기를 꺾지는 못한다. 겨울은 이제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겨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고개를 쳐들며 봄의 대기를 들이쉴 때 겨울의 잔해는 이미 없다.

 아직은 꽃이 피려고 하고 있다. 새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누구 하나 흥겹게 노래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봄은 왔다. 비록 아직은 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나 봄을 느낄 수 있다. 그것 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봄의 꿈을 잃지 않는 동안 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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