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分이라지만 아직도 아침 바람은 제법 싸늘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겨울을 끼고 있기는 봄이나 가을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봄의 평균 기온은 가을보다 10度 가량이나 낮은 게 보통이다.

그래도 봄이려니 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훈훈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봄의 詩에는 어딘가 모르게 너그러운데가 있다.

같은 사랑의 詩라도 가을에는 실연을 주로하고 봄에는 사랑의 설레임을 노래한다. 이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東洋의 시인들은 같은 봄이라도 무조건 반기지는 않는다. 어딘가 애수(哀愁)의 눈으로 봄을 보는 버릇이 있다.

...푸른 들은 햇볕에 잠들고 제일 나이든 사람이나 제일 젊은 사람이나 제일 힘센 사람과 함께 일한다...,‘워즈워드’의 3월의 시다. 이 속에는 조금도 그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勤勞의 즐거움과 자연에의 고마움이 풍겨 있을 뿐이다.

西洋의 시인들은 落葉지는 가을이 되어야 人生의 허무함을 노래했다. 동양의 옛 시인들은 새싹이 트는 봄에 이미 짧은 인생을 서러워했다.

어찌보면 그만큼 탐욕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너무나도 봄이 아름답기에 언제까지나 봄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 난다는 反言語적인 뜻도 있을 것이다.

조조(曹操)는 시에서 그렇게 인생이 짧을 바에야 빨리 뜻을 얻어 출발해야 하겠다고 노래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봄은 같다. 인생의 길에도 변함은 없다. 그러나 봄을 보는 눈만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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