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종, 에밀레종은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다. 설화에 따라 에밀레종으로 부르거나 봉덕사에 걸려 있던 종이라 봉덕사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종, 에밀레종은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다. 설화에 따라 에밀레종으로 부르거나 봉덕사에 걸려 있던 종이라 봉덕사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범종(梵鐘)소리를 들어 본 지 오래다. 도회지에 묻혀 살면 소음(騷音)이 섞이지 않은 청음(淸音)을 듣기란 참으로 어렵다. 또 이웃엔 그런 종소리를 들려줄 사찰도 없다. 암자(절)가 있어도 종다운 종이 없다. 얄팍하고 경박한 종소리는 오히려 듣지 않은 것만 못하다.

서울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타종행사를 TV로 중계했다. 그 타종음은 재생음(再生音)이라 생생한 자연음과는 물론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한 해의 마지막 초침이 움직이는 순간에 불을 끄고 TV속의 범종소리나마 듣는 감회는 여간 아니다. 

범종은 인도 혹은 중국에서 전해졌다. 대중을 모으거나, 때를 알리기 위해 종을 울렸다. 종은 단순한 주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명장들의 작품은 따로 있다. 벌써 그것은 음향이 다르다.

경주 봉덕사의 ‘에밀레’종이 갖고 있는 전설은 너무도 유명하다. 종을 심령(心靈)의 신비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이야기일 것이다. 종소리는 춘하추동으로 변화한다. 대기의 상태에 따라서 반향(反響)이 다른 때문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제야(除夜)의 종소리는 귀로 듣기보다는 마음으로 듣게 된다. 백팔성(百八聲)의 종소리는 인간의 번뇌(煩惱)를 해탈시켜 준다고 한다. 종소리가 웅---하고 울릴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사람은 일생 중에 생일을 네 번 맞는다고 한다. 첫 번째의 생일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영아(嬰兒)로 태어나는 때, 두 번째의 탄생은 ‘자아(自我)를 발견하는 때, 누구나 ’나는 무엇인가‘하는 자문을 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청춘이 고뇌(苦惱)란 바로 이런 시기를 두고 말한다. 세 번째의 탄생은 번뇌(煩惱)를 이기는 순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회오(悔悟)하고 슬퍼할 때가 있다. 인생의 고경(古鏡)을 알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나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境地)를 알게 된다.

마지막 네 번째의 탄생은 죽음이다. 자기는 죽어 없어지지만 이름과 덕망(德望)은 남아 있다.

제야(除夜)의 종소리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세 번째의 탄생을 맞게 해준다. 자기를 성찰(省察)하며 번뇌(煩惱)에서 해탈(解脫)시켜 주는 순간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때 묻은 마음을 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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