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다가오며 문제의 변두리만 뱅뱅도는 바람에 격화소양(隔靴搔癢)의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공중의 이익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사말적(些末的)인 자기판단에 대소사를 시시콜콜히 찾아나서는...,자기에게 유리한 행동만 속아내는 짓 꺼리만 한다.

’쇠 작때기 휘두르는 곳에 표가 있을 까.’ 그만큼 표와 지지행동 거리가 멀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아니! 놀랍다. 총선에 거론되는 자들 볼 때, 주민을 위해 무엇을 했나? 본인은 모르지만, 주민들이 볼 때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모르는 것 일까.

그래서 주민을 위한 정치는 아예 접고 자기출세를 위한 정치, 과거같이 당이 공천하고 찍으세요, 이젠 아니다. 천만의 그 짓거리를...이젠 소중한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정치에서 주민들은 익히고 배웠다. 그 좋든 시절 다 지나갔다.

정치인들은 묘한 민심이 흐름을 아세 모른다. 그만큼 둔한 것이다. 수족라인들 말만 여론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은 목을 세우고 어깨에 기부스를 하고 다닌다.

누군가는 ‘소갈머리 좁기가 밴댕이 콧구멍 같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 총선에 기웃거린다고 말한다. 기가 찰 일이다. 무례한 행동(전화 통화)에 불쾌를 느낀다.’ 덧에 걸려들기를 거부할지 모르지만 이미 덧에 걸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한번 성하면 반드시 쇠퇴할 날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악재는 겹쳐서 온다.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것 같다.

‘우리 말에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듯이, 생각이나 행위는 씨가 되고 업이되어 그 에 걸맞은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 인과관계의 고리다.

예로 어느 정치인은 강한 승부근성, 뛰어난 지적능력, 지치지 않은 체력으로 주민들이 지지를 받았다. 주민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이제 주민들은 그의 꼴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열정찬 한 때의 모습을 향한 존경이 마음속에 우러나오고 있다. 많은 고뇌가 필요한 시점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그도 시류 앞엔 이상한 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주민과 접근법을 고쳐야 한다. 다시 말해 절실함이 없는 것 같다. 아! 인간적인 그런 시절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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