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하루전에 필자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9일 해운대 달맞이 길에서 자동으로 찍었다 )
 *설날 하루전에 필자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9일 해운대 달맞이 길에서 자동으로 찍었다 )

 구정(舊正)은 명절(名節)인 것이다. 고향이 생각나고 가족이 그리워지는 날인 것이다. 2중과세(二重過歲)라고 흉봐도 좋다. 그러나 아직도 구정이라야 참다운 설날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어찌하랴. 문화로 정착한 것이다.

예 같으면 오늘 벽사(辟邪)의 예방으로 세화(歲畵)와 문배(門排)를 집집마다 달았다. 골목에서는 윷놀이와 뛰기에 흥겨운 아낙네들의 교성들이 가득찼을 것이다. 그리고 보름이면 어린이들이 할아버지와 함께 날밤, 호도, 은행, 잣 들응ㄹ 깨물며 즐거운 밤을 보내고......,

이렇게 기쁨과 흥겨움으로 포근하게 마음을 감싸주는 맛은 역시 겨울 한복판에 맞는 신정(新正)보다는 봄을 앞둔 舊正이 더 어울리는 것이다. 아직도 영상 5-6도의 추위가 계속되고 있으나 창밖의 햇살은 완연히 봄을 느끼게 하는 오늘의 날씨다.

舊正을 명절로 삼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되삼키면서 오늘을 보내는 것도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舊正에 얽힌 옛 풍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서운한 느낌을 씻을 길이 없다. 생활이 합리화란 지극히 바람직한 삶의 자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지나친 추구는 삶 그 자체를 삭막하게 만드는 것이다.

옛 풍습은 단순히 그것이 옛것이라 해서 인습(因習)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풍속에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생활정서와 미의식과 윤리감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舊正이 공휴일이기에 앞서 舊正에 얽힌 그처럼 흥겹고도 흐뭇하던 풍속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을 애석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예같으면 오늘만은 누구나가 덕담(德談)을 나누었다. 자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들을 낳았다면서?’ 했고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집을 마련했다면서?’하고 인사했었다.

그런 덕담을 이젠 아무도 나누지 않는다. 덕담의 풍습을 잊어서일까. 아니면 남이 잘 되기를 바랄만큼 마음들이 너그럽지 못하기 때문일까. 風俗은 세월을 따라 바뀌어지기 마련이다. 딱총놀이에 더 신명을 내는 어린이에게 윷놀이하라고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마다 설날은 우리에게서 멀어져만 가고 있는 것만 같다. 거리는 덧없이 그저 한적해 가고만 있는 것이다.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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