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를 ‘꽃의 여왕’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19세기 존 보일 오라일리라는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붉은 장미는 정열을 속삭이고
흰 장미는 사랑을 숨쉬는 이‘

아주 아름답고 멋있는 표현이죠.
장미는 꽃나무 중에서 가장 오랜 것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꽃도 아름답고 잎도 보기 좋습니다. 장미는 꽃 종류도 많고 빛깔도 여러 가지입니다. 붉은 장미도 있고 핑크빛 장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미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이 가시가 흠인지 자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독일의 시인 릴케(Rainer M. RiLke, 1875~1926)는 장미꽃 가시에 찔려서 죽었다고 합니다.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 부위에 무슨 독이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먹다 죽은 것보다는 좋은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 사람 왜 죽었느냐?” “너무 먹어서 죽었대.” 하는 것 보다는 그래도 시인답게 죽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영도에 살았습니다. 피난민 촌이라 불리는 제2송도 이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은 겨우 몸만 의지할 수 있는 작은 집에 살았습니다.  전 좀 근사한 집에 살았습니다. 그 집 울타리는 덩굴장미로 담장을 하였습니다. 한여름 장미가 피어 만발했을 때의 장미꽃 향기는 나이가 든 오늘날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장미꽃을 보면 향기를 맡아 보는데 그때의 향기가 되살아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셀리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만 들릴 때는
그 가락 추억 속에 흔들리죠.
사랑스런 오랑캐꽃 시들 때면
일깨워질 감관 속에 그 향기 잃고
장미꽃 시들어 떨어질 때면
꽃잎 모아 님의 침상 꾸미죠.
그대 가시면 나 그대 그리며
사랑을 고이 잠들게 하리.

여름이 오면, 장미가 그립습니다.
부산 인근엔 유엔묘지, 그리고 좀 멀리 울산엔 장미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매년 그 붉은 장미향을 찾아 다녀오곤 했지만 이젠 생각만 할 뿐입니다.
나이 탓인가 봅니다.


장미를 좋아한 내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지난해 멀리 떠났습니다.
시인인 그 친구는 장미를 쫓아 독일까지 유학까지 다녀왔습니다.
낭만이 넘쳤다 할까. 아니면 객기를 부렸다 할까.
그는 독일 유학에 ‘릴케’를 보고 왔고 도르트 맥주만 실컷 마시고 귀국해,
어머니에게 독일 여성하고 결혼하겠다며 난리를 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이해가 갈지 모르지만, 그때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죠.

어느 날 그에게서 ‘장미’를 보다가 그 독일 여성과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야~ 정말 친구가 ‘릴케’에 홀려 장미가시에 찔리겠구나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장미를 좋아하며 영도 함지골을
거닐며 낭만과 사랑을 노래하던 그 친구, 장미 꽃 필 때면 그 친구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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