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자세히 보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들이 있다. 우선 부처님의 앞이마 한복판에 곰보처럼 파인 점이 하나 있다. 이것은 백호(白毫)라는 것이다.

사실은 이 점에는 털이 붙어 있다. 그리고 이 털이 필요한 때면 마치 ‘안테나’처럼 길게 뻗어 나간다. 그리하여 먼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아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부처님에게는 이것 말고도 또 하나 다른 데가 있다. 만망상(縵網相)이라는 것이다. 손가락 사이에도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같은 막이 붙어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시름에 빠진 중생(衆生)을 건져내는데 손가락 사이가 벌어져 있으면 아무래도 곤란하다. 이런 것은 되도록 많은 사람을 구제(救濟)하겠다는 불심(佛心)에서 마련된 것이다.

이런 부처님의 ‘이미지’는 따지고 보면 사고팔고(四苦八苦)의 삶에 시름하는 인간(人間)들의 꿈이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옛사람들이 불타(佛陀)의 세계(世界)를 다시 없이 동경한 것은 비단 진리의 세계를 그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아무리 사소한 시름이라도 두루 굽어 살펴주신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불타(佛陀)가 그처럼 소중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만약에 부처가 중생(衆生)의 모든 시름에서 완전히 초연(超然)하게 앉아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만약에 부처에게 만망상(縵網相)이 없어서 일부의 사람들만 걸러내어 구제해 준다면 그리 고맙게 여겨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은 또 다른 부처의 세계를 옛사람들은 만들어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세연 국회의원은 신임 구청장과 한나라당 소속 시-구의원들이 함께 한자리에서 주민에게 친절하고 성실하게 봉사하도록 당부하면서 더욱 구민들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말했다 한다. 지금까지 당선만 되면 그만이란 자세로 의정활동을 한 선출직들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을 것이다. 정치인이라 해도 부처만큼 자비(慈悲)로울 수 없다. 감투의 사다리가 곧 부처에의 길을 뜻하는 것도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정치인은 같은 주민 입장에서 봉사를 해야한다는 점엔 틀림이 없다.

같은 주민이면서도 한쪽은 봉사를 하고, 한쪽은 당선만 만끽하고 봉사를 뒷전인양 여긴다면 이처럼 불합리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공천권자인 국회의원에게 대놓고 말은 못하고 선거 때 가서야 표를 가지고 심판한다. 적어도 주민들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게 정치 현실이다.

정치인이 부처의 백호(白毫)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러나 주민들은 봉사가 목적인 정치인에게 백호(白毫)가 있길 바란다. 또 백호(白毫)와 만망상(縵綱相)있는 정치를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정치의 이상상(理想像)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려는 성실한 자세가 보일 때 주민은 비로소 정치인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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