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를 가장 즐겨 그리던 화가는 ‘고흐’였다. ‘나는 신(神)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내게 창조력을 주는 나 자신보다 위대한 뭣인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이렇게 말한 ‘고흐"는 그런 힘의 상징을 해바라기에서 봤었나보다, ‘고흐‘이외에도 해바라기를 즐기던 예술가는 많다.

‘오스카 와일드’는 해바라기 꽃을 손에 들고 ‘런던’서 거리를 자주 누볐다. 해바라기의 대담하게 밝은 색채가 그의 유미주의(唯美主義)에 어울린다고 봤던 것이다. ‘앙드레 지드’는 또 해바라기를 창조의 악마(惡魔)라고 말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고흐’의 무덤에는 언제나 해바라기 꽃이 있고, 이곳을 찾는 화가들은 그 씨를 받아오기도 했다. 묘하게도 그 씨를 일본이나 한국에 옮겨 심어도 ‘프랑스’에서 만큼 큰 꽃이 피지를 않는다. 역시 해바라기는 서양의 꽃이라서일까. ‘콜룸부스’의 ‘아메라카’ 발견 이후 황금을 찾아 신대륙에 건너간 ‘스페인’ 사람들은 ‘인디언들’이 아끼는 ‘황금의 꽃’을 처음 보았다. 그 후 1569년에 ‘스페인’의 ‘모나르데스’가 쓴 식물지에 이 꽃이 소개되었다.

동양에 이 꽃이 오기는 그로부터 약 1백년쯤 뒤의 일이었던 것 같다. 청나라때의 ‘광군방보(廣群芳譜)에 처음으로’서번규(西番葵)얘기가 나온다. 西番의 番은 번(蕃)과 같다. 곧 서번규란 서양의 꽃이란 뜻이 된다.

향일규(向日葵)란 이름은 그 후에 생겨난 것 같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해바라기를 아끼고 있는 곳은, 이 꽃을 국화로 삼고 있는 러시아이다. 90년대만 해도 연생산량이 9백만톤씩이나 재배했다. 이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우선 그 씨는 식용이 된다. ‘고골리’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늘 해바라기씨를 아작아작 씹고 있다.

또한 기름은 ‘올리브’유에 맞먹는 풍미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씨를 눌러 짜고 난 다음의 유조(油槽)를 또 한번 짜내면 초나 비누의 원료가 된다. 소련에서는 이 유조를 가축의 사료로 하여 ‘덴마크’나 ‘스웨덴’에 대량 수출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해바라기의 줄기나 꽃으로 종이를 만들 수도 있다. 가볍기 때문에 배의 구명대(救命袋) 재료로도 안성맞춤이다.

해바라기를 아끼는 것은 ‘러시아’만이 아니다. 미국 ‘켄자스’주도 주화(州花)로 삼고 있다. 옛날 서부영화에서도 가끔 튀어나왔다. 뜨거운 햇볕을 받아 노랗게 타오르듯 활짝 펴 있는 해바라기의 꽃은 여름과 함께 검게 그을려 타버리고 만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도 해바라기는 어린이들의 환상(幻想)속에 오래도록 남았던 옛날이다. 이제 그 해바라기가 다시 활개를 펴려는가 보다. 오늘의 어린이들은 그 꽃에서 무슨 환상을 찾아낼 수 있을까. (201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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