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준 칼럼"

국정 감사도 이제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 매일 같이 감사를 받는 광경이 사진으로 보도된다. 꼭 검사 앞에서 피고들이 문초를 받고 있는 것 같은 광경들이다.

국정 감사장에서 막말을 한 국회의원들의 요즘 행보도 웃음을 자아낸다. 부산 모 백화점에서 자서전 북 콘서트를 연 것이다.  보도로 본 그 얼굴은 착한 서민풍 얼굴. 왜 그런 그가 막말을 해댔을까.

부잣집 귀공자여서 그렇게  인성이 됐나?, 아니면 권력을 움켜쥐고 돈이 많아 행동거지가 비뚤어졌나?   장관보고 대놓고 막말을 하다니... 아니면 장관이 성실한 답변을 안해서였나?  참, 그건 그렇고 이 국회의원이 대선에 출마한답시고  "자서전" 북 콘서트를 열고 다닌다는 것.

서민들은 권력과 돈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 그게 현실이다. 아직도 국회의원들이 국민들 생활 실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은 것 같아  씁쓸함을 갖게 한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뽑을 때 정말 잘 뽑아야 한다는 것이 서민들에겐 진리인 것이다.
 

각설하고,
아무리 국회의원이 지체가 높다하더라도, 또 아무리 국정 감사가 중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감사를 받는 쪽이 움츠리고 있어야 할 까닭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정말로 떳떳하게 소신껏 일해왔고, 양심을 숨길 일이 전혀 없었다면 말이다.

어느 감사장에서나 의원들은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호통을 치고 있다. 그러나 숨길 턱은 없다. 중언을 할 때에는 반드시 선서를 하도록 법률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양심에 따라 사실대로 말하고 무슨 일이든지 감추거나 보태지 아니하기로 맹세한다.....’ 반드시 이런 서약을 한 다음에야 장관이든 누구든, 감사를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선서’라는 형식이 생긴 것은 서양을 본뜬 것이다. 다만 서양처럼 누구나가 다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양심에 따라’라는 문구가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양심이 있고, 또 양심에 따라 일한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서양에서도 진보적인 젊은이들은 요새 가령 결혼식을 올릴 때 판에 박은 기독교식을 따르지 않고 그냥 ‘양심과 사랑의 이름으로....’ 라고만 선서한다. 형식화된 종교적 신앙을 내세우느니, 양심이나 사랑과 같은 보다 충실한 것을 내세우는 게 훨씬 성실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양심의 맹세도 그리 믿을 만한 것은 못된다. 양심을 저울질 할 도리가 없는 바에야, 몇 천번이고 ‘양심’을 들먹인다고 조금도 가슴이 뜨끔해질 것은  없을 것이다.

양심이 없을 때에는 물론 더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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