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준 칼럼]

 어느 집안에나 족보(族譜)가 있다. 족보가 없으면 양반소리를 못 들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족보는 모두가 이조시대 때부터 시작된다. 족보란 유교의 영향을 받은 다음부터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족보에 나오는 시조는 대개가 왕족(王族)이 아니면 높은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다. 시조가 될 만하면 높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시조라고 꼭 높은 사람이어야 할 까닭은 없다. 더욱 이상한 것은 한 씨족(氏族)의 시조가 어떻게 이씨왕조에 생겼느냐는 데 있다. 혹은 강씨(康氏)며 김씨며 하는 씨성(氏姓)이 이조(李朝)때부터 생겼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름이야 어떻든 진공(眞空)속에서 갑자기 시조가 나타났을 리는 없다.

시조에게도 아버지가 있어야 하고 할아버지도 있어야 한다. 이씨왕조의 백성들이라 해서 다른 곳에서 이주해 온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토착민들이다.

 李氏朝鮮이 있기 전에는 고려(高麗)가 있었다. 그리고 고려의 유민(遺民)들은 대부분 그대로 제 고장에서 살아나갔다. 그러나 고려 이전에는 또 백제가 있고 또 그보다 앞서서는 신라가 있다. 그 이전에도 또 사람들은 한반도 안에서 살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선조(先朝)란 아득한 옛날에까지 얼마든지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갈수록 각 씨족들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가령 곡산강씨(谷山康氏)라 해도 그 안에는 여러 파(派)가 있다. 같은 돌림이라 해도 사돈의 8촌보다도 더 먼 종씨(宗氏)가 된다. 시간이 흐르고 인구가 늘어갈수록 그들의 사이는 더욱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사이는 가까워지고 수효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무한정 거슬러 올라갈 수도 없다. 역사시대란 보통 천년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은 전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줄기는 있어야 하고 뿌리도 있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단군(檀君)이라 여기고 단군이 이 땅에 나타난 날을 개천절(開天節)이라 하여 기념한다.

따라서 단군이 실제 인물이었는지는 또 개천(開天)이 정확하게 언제였는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모두가 하나로 귀일(歸一)된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한 가족,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모두가 화목해 질 수밖에 없다.

3일은 그런 것을 생각하는 날이다. 모두가 나눠 갖고 있는 뿌리를 캐내고 집안의 족보를 아끼듯 나라의 족보를 더듬어 보는 날이다. 엄숙한 마음으로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리하여 모두가 한겨레였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201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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