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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용'이 혀로 불을 지피는 모습입니다. 인류이래 용을 본 사람은 없죠, 그저 전설일 뿐입니다. 범어사 어느 암자에 용이 나타나 불을 지피는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저 단순한 것인데 빛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작업한 것 입니다. 이렇게 사진이 주는 힘은 대단합니다. 주관적이지만 거대한 용이 포효하고 있습니다. '세상 잘 살게 하라'하고 질책하는 것 같습니다. 섬뜩 합니다. 누구에게 일까요?"돌아갈 순 없어도 돌아볼 순 있어" 추억을 꺼내 닦아보자. 맑아 질때 까지. 그리고 우리모습을 비춰보자.
“그대가 표현하는 말을 잘 검토하라. 별다른 생각 없이 한 말이 눈사태처럼 부피를 더하고, 드디어는 지역사회에 생활환경을 파괴해 버리는 일이 번번히 있기 때문이다.”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 또 아는 자는 오히려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라고 노자(老子)가 말했다.그래서 궤변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억지로 꾸며 대는 말을 일컫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논리의 내용을 무시하고 오직 형식적인 논리 위에서 거짓을 참으로 꾸미는 말을 지칭하는 것이다.궤변일수록 아름답다. 거짓을 참된 것으로 포장하
올 추석이 두 주나 빨리 찾아왔습니다. 아직 벼도 황색이 덜합니다. 들판이 벼도 아직 누런빛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팬데믹(pandemic), 태풍으로 우리들 마음은 편치 않다.춘추의 필법을 빈다면 「온 나라안이 고향을 찾아 나선다고나 할까」 추석 연휴가 4일이고, 날씨도 맑고 하니 팬데믹으로 힘든 시기가 일시나마 들뜨기만도 한다. 그렇잖아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하여라』고 반겨오던 이날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성묘란 허울좋은 구실일 게다. 정말로 조상을 섬기자는 애틋한 마음으로 이날을 맞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정치현실은 하루가 멀 만큼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를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대개 TV를 시청하며 불만의 소리를 하지만 외부론 말하지 않습니다.말은 없지만 선거 때가 되면 의사표현를 표로 매섭게 심판합니다. 이게 ‘내심의 의사표시’입니다. 속마음을 표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정치와 정치인이 생각하는 정치공학(구도)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정치인은 재선을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행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불평을 합니다. 현실정치와 정치공학의 괴리입니다. 6.
다 부려놓고 오리라. 새벽을 뚫고 달려갔습니다. 파도가 시키는 대로 훌훌 벗어도 보고. 엄벙덤벙 살아온 시간을 첨벙첨벙 헹구어도 보았습니다. 바닷물 위로 뛰어 오르며 춤추던 숭어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찌든 삶 서툰 쉼, 해를 품은 바다 너무 눈부셔, 마음의 짐은 품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대의 외로움이 보입니다. 문득 사람이 그립습니다. 우리들이 버린 숱한 꿈들도 어디애선가 땡볕에 익어 가겠지요. 처연한 흰 손은 누굴 향한 절규인가요.나그네는 어디에선가에서 눈을 만나 사람이 되겠지요. 그 옛날엔 화롯가에 둘러앉아 옛날얘기
지역이 발전하고 창조력에 넘쳐 있을 때는 기인(奇人), 손쉽게 말해서 「괴짜」가 잘 나타난다. 괴짜가 많아야 지역이 잘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괴짜란 그만큼 사회의 상식적인 틀을 벗어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틀을 벗어나면서도 살수 있다는 것은 그 너그럽고 그만큼 틀이 유연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괴짜를 받아들일 만큼 사회의 틀이 유연해야 제대로 발전과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괴짜」는 틀을 무시한다. 그러니까 틀쪽에서 보면 「괴짜」는 일종의 위험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괴짜」가 버젓이 살아가고 때로는
내려오다 멈춘 구름, 멈춘 사람들, 거리를 두고 서로 멈춰 서 있음은 처음엔 희열이며 갈증이지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시간이 딱지로 굳어 만지면 남루한 추억으로 떨어지지요. 그대의 기다림도 습관으로 굳어가고 있지 않나요. 나이처럼 무겁지 않나요. 저 소나기에 씻겨봐요.(사진 설명: 잠자리가 높은 하늘을 날다 지쳐 잠간 연 줄기에 앉아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언제 또 날아야 할 까? 고민 중입니다. )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1959년에 발표된 김수영) 1921~1968)의 詩 ‘폭포’입니다. 빌려왔습니다.시인은 곧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물줄기를 보며 굴복하지 않는 정신을 생각했다 합니다. 사진은 양산 홍룡폭포입니다.나이들어 지금 보면 평소와 다른 언행으로 감정상하고 척지는 일도 있어 원망스럽습니다. 지금보니 심술도 궂고 미운데도 적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어려운 시절엔 민생중심의 정치, 권력이 아니라 삶의 정치를 강조했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방선거를 치뤄며 일부이겠지만 비난
사진 속 ‘용눈이오름’은 신비롭고 아른아른하며, 먼 듯 가깝고 속세이면서 피안과 같은 모습이다. 제주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제주도에 가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벗어 놓은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언제 제주도에 가든 그렇다. 네 마음은 제주에서 따뜻해진다.이런 저런 연유로 ‘용눈이오름’을 사랑한다. 가끔 고인인 ‘김영갑 갤러리’를 찾아 간다. '용눈이오름' 작품에 놀라 이 분이 생전 작업한 작품을 보고 감성적으로 느낌이 설렘으로 바뀌어 근 16년간 ‘용눈이오름’의 사계절을 카메라에 담아오고 있다.그런 후 제주에 갈 때면 ‘김영갑’ 갤러
# 저 푸른 하늘과 푸른 바람은 대자연의 노여움인가, 축복인가. 쏟아지는 햇살, 침묵의 불볕, 가는 곳마다 말 없음표 또는 의문부호. 우리시대의 장마는 무엇이며, 소나기는 무엇인가.오후엔 시위하듯 떼구름. 소나기 느닷없이 대지를 때리고. 다시는 침묵에 잠기는 수상한 여름. 땡볕에 연꽃은 욕심을 내려 놓아라 하지만... 그 교만과 몰염치는 천성이 되었네..# '배반당한 사람은 배반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게 되지만 배반하는 사람은 한층 더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마련이다'는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명언. 정치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사람에게는 누구나 위대해지고 싶다는 꿈을 갖는 순간이 있다. 그런 꿈을 안고 한 평생을 지내는 사람도 있다. 위대해지기 위하여 권력을 모으고, 돈을 모으고, 하는 사람들은 물론 많다.말 하나로 지역을 움직일 수 있으면 위대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끔찍한 착각이다.위대한 사람이란 세속적인 저울대에 의해서 측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런 착각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시대가 움직여질 때는 이를 데 없는 비극이 된다.사람에게 ‘위대한 인간’에는 반드시 신념이 있다. 올바른 신념
사람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장마를 싫어한다. 하지만 장마 때는 장마만의 풍경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계절 특유의 어슴프레한 태양빛 아래서 낮잠을 자는 것 만큼 현실을 등질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바깥세상은 인간 피부만큼 부드러운 온기를 띠고 있다. 뜨겁지도 춥지도 않다. 바람도 없고, 공기 중 수분에 소리가 흡수된 건지 잡음이 사라지고 물소리만 몸에 스며든다. 하늘은 노랑생이 칠한 것 같은 회색이다. 공기는 페르메르 그림 속의 다정하고 희미한 빛을 아련히 품고 있다. 귓전에 내리는 빗속에서 몽롱하게 꾸는 꿈도 좋다.올해 장마는
빛에 따라 바다의 색의 변합니다. 종일 바다를 바라보아도 심심하지 않은 것은 바다에는 언제나 빛의 예술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붉고, 때로는 푸르고, 때로는 검붉은 색의 변화에 바다의 참된 성품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바다에도 처음에는 빛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연을 따라 저렇게 물결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결은 바다의 인연을 따른 몸짓일 뿐 바다의 참 모습은 아닙니다.저렇게 태양의 빛을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바다는 빛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빛을 따라 스스로 빛의 모습을 그려가는 모습이 마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신약성서」 ‘마태복음’ 에 나오는 말이다.사람들은 누구나가 그렇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한 점 티끌은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내고야 만다.‘취모멱자(吹毛覓疵)란 말이 있다. 털을 헤치며 흉터를 찾는다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꼬치꼬치 캐어서 찾아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우리 속담에는 그런 것이 참 많이 있다. ‘그을린 돼지가 달아 맨 돼지 타령한다’는 것은 자기 흉은 모르고 남의 흉만 탈을 잡고
선거를 흔히 ‘바람’이라고 들 한다.으레 선거철이면 정치는 예외 없이 바람으로 변신하고 바람으로 몰아친 후 바람처럼 사라진다. 언론은 바람에 요동치는 민심을 드라마틱하게 보도하고 선거는 바람으로 결딴난다.지방선거 27여일을 앞두고 선거의 계절은 막을 올렸다. 지방선거에 부는 바람의 양은 우리 정치의 불안정과 후진성이 그만하다는 것이고, 그 바람이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민도가 또한 그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바람의 정치는 정치외적 변수가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혼돈의 정치이었다. 그간에 분 바람은 정치영역 밖의 이슈가 주도했기에 풍향으로
‘배신의 기억은 오래간다. 감정은 사람의 판단을 결정하는 원초적인 힘이다. 이성은 감정이 내린 판단을 합리화하고 실행할 따름이다. 그래서 배신이 부른 증오의 감정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화사한 벚꽃이 활짝 반긴다. 새벽부터 코로나로 힘든 시민들이 마스크를 하고 벚꽃 길을 따라 걷는다. 아늑함이 가득한 고즈넉한 풍경속 사람들은 무척 건강해 보인다. 그래서 아늑함이 더하게 한다.화사한 벚꽃 속에 살면 사람도 자연히 포근해 질 것 같다. 며칠이면 낙화하지만 이 순간만이라도 가족끼리 친구끼리 삼삼오오 벚꽃 길을 걸으며 즐거움이 정답고 포근하게 보인다. 도시에 살며 숨 막힐 때, 어지러울 때, 마음이 복잡할 때, 외로울 때, 허전할 때, 좀 사는 게 좀 힘들다 싶으면 시간을 쪼개 벚꽃 길을 길으면 마음을 차분하게 하세요.
문득, 가을 산사가 그립다. 부산 범어사 가을 풍광. 이 봄에 가을을 그리워 할까. 의문이다. 나이탓 이겠지요. 반가운 눈 맞춤 한번 하고, 머무는 가 싶더니 훌쩍 산사를 떠났다. 서리 맞은 잎들의 처연한 이별 연습이다. 낙엽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끝의 시작, 시작의 끝, 사람은 인생을 어느쪽에 매달까. 어느새 가을 깊숙히 나는 들어섰다.(사진은 2021년 가을 범어사 종무소 지나 가을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단풍이다. 모습이다. 처연하다.)
동백꽃은/ 훗 시집간 순아 누님이/ 매양 울며 보던 꽃/ 감성적 표현이 아닌 그 형상미로도 정말 아름답게 표현했다.고향집엔 고목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다. 가난을 이겨낸 할머님처럼 아름드리로 굵게 자라서, 의구심이 들 정도의 고목이다. 그 동백나무는 고향집 역사를 한눈에 느끼게 한다.동백꽃, 하면 거의 상투적으로 서정주 시인의 시와 함께 그의 고향 전라도 고창의 선운사를 떠 올리는 이들이 많다. 아쉽게도 내게 그곳은 멀기도 멀어 여건이 허락지 않아 인연이 닿아 있지 못하다.고향집 동백꽃, 할머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