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옛날이 좋았던 것 같다. 날씨도 그렇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삼한사온이 알맞게 추위를 견디게 만들었다. 여름이 아무리 길어도 중복만 잘 견디면 되었다.요새는 삼한사온도 없고 여름이 따로 없다. 부산은 30도를 넘어가고 있다. 여름초입이라 더위가 찾아 들 때이다.『공상은 당신에게 여름 철의 온갖 기쁨을 안겨 줄 것이다. 이슬을 머금은 잔디, 또는 가시 붙은 가지에서는 온갖 봉오리와 꽃들을...』 이렇게 「키즈」는 5월부터 여름이 오기를 기다렸었다.이제는 여름을 기다리는 것은 어린이들 밖에 없다. 여름 방학이 있기 때문이다
‘항룡 유회(亢龍有悔)란 말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높이 올라간 용은 뉘우치게 된다는 뜻으로, 자기 분수에 넘치게 존귀함을 구하게 되면 실패한다는 말로 쓰인다. 이 글귀를 빌려쓴다.또 ‘묘시 파리(䏚視 跛履)란 말도 있다. 애꾸눈이 환히 보려고 하고 절름발이가 먼 길을 가려 한다는 뜻으로, 분외(分外)의 일을 하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화(禍)를 부르게 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세상을 살아가는 길에는 분수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몫의 그릇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일 것이다.분수라는 말을 ‘국서사전’에서는 타고난 운
사진속에 담긴 ‘용눈이오름’은 신비롭고 아른하며, 먼 듯 가깝고, 속세이면서 피안과 같은 모습이다.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 흡사 여성이 곡선처럼 부드러운 지형이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다. 구름사이로 내리 비치는 햇빛이 그 위를 쓰다듬을 때면 극장에 나 홀로 와 있는 기분마저 든다. 불가사의한 정적이 감돈다.‘용눈이’의 바람이 내 몸 어딘가에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었다. ‘용눈이오름’의 거친 바람이 내개 에너지를 준 것이다. 그 에너지로 나는 글을 쓸 수 있었다.‘바람이여, 고마웠네.’ 라고 인사하고 싶어진다.‘용눈이
지금, 이곳 오직 나에게 귀 기울입니다.우리는 너무 자주 변합니다. 어제는 좋았으나 오늘은 원망하는 사이가 되고, 오늘은 곁에 있었으나 내일은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세상에는 호전적인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끝내 승자가 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굉장히 인간적이다가 패거리 얽힘을 만들어 표리부동한 행동을 하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못난이 산 귀퉁이’를 하는 겁니다.그러나 나이가 드니까 인생은 단지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 절실해 집니다. ‘시간은
인도(印度)는 낯설지 않은 나라이다. ‘세계문화사’를 펼쳐보면 어느 저자의 책이든 ‘인더스’ ‘갠지스’강 유역의 찬란한 문화가 서술되어 있다.그것은 인류문명의 고향인 셈이다. 이 역사의 동녘이나 다름없는 인도가 어딘지 ‘인간가족’의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은 웬일일까.인도인의 인상은 반라의 ‘간디’상을 연상하기 쉽다. 그 것은 기름지고 유들유들한 그런 모습은 아니다. 고난과 시련에 찬 성자의 모습이며 고행하는 수도자의 상이다. 인도인은 그처럼 검소하고, 상적이고 또 인간적이다.고 ‘J.네루’(전 인도수상)는 ‘고뇌와 수난(
초파일을 앞두고 범어사에 연등이 환하게 달렸다. 연등은 사바세계의 어둠을 밝혀주는 데 그뜻이 있다. 연등은 불교에선 부처님의 지혜가 밝은 것을 뜻한다. 그래서 법당이나 그 주변엔 등용이 있게 마련이며, 이것은 불타의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을 등불을 높이 처들어야 보이는 존재는 아니다. 불타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청정한 불성을 스스로 찾으라는 것이다. 그 말은 등불을 밖에 켤 것이 아니고 자기의 마음속서 켜라는 뜻도 된다.우리가 마음 속을 환희 밝혀주는 등불을 저마다 켤수 있다면 열반의 경지를 멀리
맑은 날입니다. 맑다는 것은 구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름 없는 하늘은 매우 투명해 눈이 부시기까지 합니다. 비움이 좋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비워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그 비워 버린 것의 내용은 내가 홀로 존재한다는 그릇된 생각입니다. 아무것도 홀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비어있다고 말합니다.그러나 그것은 또한 모든 것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진 조화가 바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오늘 맑은 하늘을 보면서 하늘 속에 내가 있다는
시인은 허풍을 잘 떤다. 『5월이란 젊음과 사랑과 노래와 그리고 삶 중에서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뜻한다.』 이렇게 노래한 「롱펠로」도 허풍장이였나보다. 그렇치 않으면 「롱펠로」시절의 5월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찔레꽃 만발하니 적은 가물 없을 소냐. 이때를 승시하여 나 할 일 생각하소.'이렇게 꽃을 보고도 가뭄 걱정을 하게 되던 것은 험상스런 우리네 자연의 탓이었는지, 또는 웃음보다 눈물로 지새우는 시간이 더 많았던 버릇에서 나온 것인지, 알뜰하고 근면해서만은 아니다.「롱펠로」에게는 5월이란 마냥 즐겁고 아름답게만 보였
노인들은 살아생전에 아들딸들이 결혼하기를 소망한다. 결혼한 자녀들을 보면 이번엔 또 후손까지도 보고 싶어 한다.이제 할아버지는,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어린 손자의 모습을 보며 마치 어린 시절 자신의 화신이 재현된 듯한 감회에 젖을 것이다.손자의 손을 만지며, 혹은 뺨을 비비며 노인을 정말 자신의 혈육이 이처럼 생명감에 넘쳐 다시 꽃피고 있는 것에 감동할 것이다. 이것은 평범하지만 더 없이 감동적인 인간‘드라마’다. 인류는 오랜 역사를 두고 이처럼 아름다운 ‘생명의 흐름’을 보아왔다.인간은 어린 시절, 청년, 그리고 성년시대를 이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기가 자신의 한 몸에 모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명예나 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남들이 몰라주면 가슴을 조이거나 화를 내거나 아니면 너무한다고 남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서 잘못된 것은 모조리 남의 탓이고 잘되면 내 덕이라는 이기심이 비롯된다.나만 잘났다고 앞세우면 세상 사람이 모두 벗으로 보이기 보다는 상대로 보이게 되고, 상대로 보이게 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대립의 관계로 보이거나 다투어야 될 경쟁
나이 팔순(八旬). 또 팔질(八耋)이라고도 한다. 팔순이 되니 할미꽃이 생각난다. 그것도 제주 ‘용눈이 오름’, 봄이면 파릇파릇 새 생명이 속삭일 때 등 곱은 할미꽃은 머리에 백발을 흩날리는 늙은이처럼 생명을 다하려 바람에 흩날린다. 그래서 백두옹(白頭翁)이라고도 일컬었다.이 나이드니, 이젠 글 한줄 말 한 마디도 조심하게 된다. 내 직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매일매일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가다듬는다. 훌륭한 어른은 못 되더라도,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사람은 변한다. 세월이란 이 몹쓸 것은 안타깝게도 사람을 변
돌아가고 싶어. 그 풍경 속으로. 카메라들고 포인트 찾던 그 시절, 눈에 들어온 그 호수, 그 옛날 호수는 아니다. 세월이 바꿈질 했는데 어수선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 길엔 그래도 벚꽃으로 환해진다. 떨고 있군요. 숨기지 마세요. 그대 가슴에 신열을 끼얹는 봄, 그냥 받아들여요. 당신 곁엔 또 다른 누가 있잖아요. 저 벚꽃이 온몸으로 껴안은 저 화려함을 보세요. 햇살까지 부러뜨리는 무서운 힘을. 세상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지요. 와와, 화사한 벚꽃. 이 작은 평화, 햇살 한줌 없이도 왈칵 목메이는 봄.(작업
해운대 달맞이길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잎들이 벌이려는 모습에서 늙음을 봅니다. 입을 꼭 다물고 있었을 때는 화사한 입술과이 새콤한 생명이 기운이 느껴졌다면 만개를 지나버린 벚꽃이 모습에서는 애잔한 생명의 흔적들을 만날 뿐입니다.생명은 피고 시들고 사라지면 또 다시 찾아옵니다. 그 어느것도 생명의 바다를 떠나는 것은 없습니다. 생명의 바다는 무한이고 영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고감을 슬퍼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오늘 벚꽃이 사라져도 또 다시 내년 봄이 되면 화사한 벚꽃의 모습을 찾이 듭니다. 그러나 지금 벚꽃길에는 그 아름답던 꽃
제주에서 이 글을 씁니다. 봄이 먼저 찾아오는 곳 제주, 풀들이 솟아 오릅니다. 바람의 끝을 슬쩍 당겨 본다. 저만치 아스라한 유년의 기억, 버들피리 입에 물고 온종일 쏘다니던 햇빛 벌판, 필리리 필리리, 연두빛 파문, 풀물들어 싱싱하던 가슴, 잊어버렸는가. 그리움 얼마나 더 익어야 푸른 빛 돌까. 휑한 가슴엔 더운 바라만 불고.... 공기가 투명하지가 않다. 물기를 머금은 듯이, 꿈을 머금은 듯이 미세란 놈과 모든 것이 보얗게 보인다.흙을 밀치며 다툼하는 풀잎도 흐느낍니다. 그대의 외로움이 더 외롭게 보입니다. 문득 사람이 그립습
파도 소리를 듣습니다. 물결이 들고 나는 자리에는 모래 언덕이 생겼습니다. 그 모래 언덕에 앉아 나는 바다 물결을 느낍니다. 오래 바다를 느끼다 보면 바다 물결은 또 다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누군가 외로워서 왔을 이 바다. 그리고 이별 그 이후의 아픔을 버리려 왔던 바다에는 그 한 줌 마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때 그 마음의 슬픔은 이미 슬픔의 물결은 아닙니다.모든 것이 한 맛의 평등함을 이룬 바다에서 슬픔의 물결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한 맛의 평등함을 이룬 바다에서 슬픔과 기쁨, 외로움과 따뜻함은 하나가 되어
'때를 알고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에는 어떤 성숙함이 있습니다.모든 것은 다 때가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마음을 조급하게 닦달하지 마십시오. 때가 아니면 이루어 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다 인연이 도래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기다리는 마음,그 마음에는 세상의 순리가 담겨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사람은 때로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고는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절망이나 낙담은
(주: 우선 사진부터 설명합니다. 제주 한라산 겨울입니다. 2015년 2월, 무척 추웠습니다. 그 때는 젊었으니까요, 용기를 내어 지인과 함께 산행을 하고 윗세오름 산장에서 일 주일간 이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렸습니다. 이젠 늙어갈수가 없죠. 그땐 한라산 가는 용기가 어떻게 ? 한라산 설경은 정말 천국이었습니다. 마지막 여행으로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 내게 고마웠던 이들의 이름을 떠 올리며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바라는 한 가지는 나로 인해 마음 아픈 사람이 없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사진 속에 담긴 용눈이 오름은 신비롭고 아른하며, 먼듯 가깝고, 속세이면서 피안과 같은 모습이다. 제주의 오름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산이다. 용암이 지표면을 터트릴 때 상층에 있느 가스가 폭발하면서 용암이 팝콘처럼 튀어 올랐다가 분화구 주위에 떨어져 형성된 것이 오름이다.제주의 모든 오름이 이러한 화산활동을 형성되었다. 오름은 평지서 부터 정상까지 모두 용암이 팝콘처럼 잘게 부서진 스코리아(제주어로 송이)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특성때문에 오름은 쉽게 훼손될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오르면 오름을 덥고 있는 풀들이 먼저 사라지고,
2023년의 새해가 밝아오른지 어느새 20여일이 지났다.1년의 근 12분의 1이 지난 셈이다. 아무 한 일도 없이 이럴게 생각하면 어쩐지 허전한 생각이 든다.그런 한 해의 12분의 1이 어느새 흘렀다. 새삼 덧없는 세월의 흐름을 의식하게 된다. 한 해가 좀 더 길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의 ‘템보’가 빨라질수록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도 날카로워진다.시간을 아껴 쓴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을 뭣에 쓰느냐는 게 사실은 더욱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역시 시간은 모자라는 편보다 남는 편이 마음이라도 즐겁다.
제주 성산일출봉 광치기 해변 풍광이다. 가끔 제주에 가도 광치기 해변을 걷는 일은 없었다. 구랍 22일, 제주일대가 눈으로 하얗게 새 옷으로 갈아 입은 설국이다 는 뉴스를 듣고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곳을 찾아갔다.눈이 내리는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꼬리를 잇는 햇살이 잠깐 얼굴을 내밀기를 설렘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었다.함박눈이 낮부터 펑펑 내려 바다 모래사장은 장관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았다. 마음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갖게 했다. 여태 살며 이런 온유한 풍광을 보는 건 처음이다. 그리고 눈 쌓인 바닷가